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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뜻한 하루

엄마가 늙는다는 것

저는 칠남매 중 막내딸이라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.

부유한 형편은 아니었지만, 가족들의 도움으로 대학교도 졸업하고, 결혼도 해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.

그런데 갑자기 제 인생에 모진 비바람이 닥쳐왔습니다. 잘 되어가던 남편 사업이 하루 아침에 부도가 나버린 것입니다.

모든 것을 잃어버린 저희 가정은 생각지도 못하게 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.


한국을 떠나 올 때, 아버지는 내게 돈 봉투를 꺼내주셨습니다.

"미안해하지 말고 빈손보다는 나을 거다."

자녀들에게 받은 용돈을 모아오셨던 아버지의 비상금이었습니다.


그 돈을 받자니 면목이 없고, 안 받자니 부모님 가슴에 두 번 못질하는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받았습니다.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각오로 어금니를 깨물며 떠나게 되었습니다.


그 이후, 엄마는 늘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걱정하셨다고 했습니다. 그런데 저희가 떠나고 얼마 안 돼 넘어지셔서 허리를 다치셨고, 한참을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. 그 소식을 듣고도 찾아뵐 수 없어 자식으로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.


그렇게 우리 가족은 몇 년 만에 한국에 가서 부모님을 만났습니다. 제가 만난 아버지는 변함없는 우리 아버지가 맞았지만 엄마는 외국으로 떠날 때 만났던 엄마가 아니었습니다.


너무도 많이 수척하게 변해버린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.

"엄마, 엄마는 늙으면 안 돼.. 할머니가 되면 안 돼.."

엄마가 빨리 늙으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속상하고, 죄송했습니다.

흰머리는 늘어나고, 눈은 점점 침침해집니다. 그리고 몸은 왜 이리 여기저기 쑤시고, 기억력은 흐려지는지..

늙는다는 것은 퍽 서글픈 일입니다.

특히, 부모님의 이마에 늘어가는 주름은 우리 마음을 더욱 애잔하게 만듭니다.


# 두 팔에 자식을 안고 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처럼 매력있는 일은 없다. 그리고 여러 자식에게 둘러싸인 어머니처럼 존귀한 것은 없다.

- 괴테 -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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